우당 한석봉 - 여운 reverberation 2020. 08.07 fri _ 08. 19 wed


글 ㅣ 2020년 7월  김종진

우당(尤棠) 한석봉이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우당과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당시 동양화 특활시간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 사귈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우당은 이과, 나는 문과 반이었기 때문. 동양화를 통해 우리는 친구가 됐고, 고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인생길을 걸으면서도 그림이라는 대화의 창이 늘 열려 있었다. 또한 동양화를 배우면서 우리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규당 한유동(葵塘 韓維東)선생을 은사(恩師)로 모실 수 있었던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


葵塘 韓維東 선생님은 서울 용문 고등학교에서 수년간 동양화 특별활동 수업을 하셨는데, 우당과 나는 그때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 고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우리는 선생님의 특별한 배려로 주말마다 창동의 자택을 찾아 지금 돌이켜보면 꿈만 같은 동양화 사사를 수년 동안 받을 수 있었다. 그때 우당과 나는 십여 년 동안 필묵의 벗으로 혹시 그림을 업으로 삼아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었다. 우당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했고, 나는 학업을 이어갔지만 우리는 화선지와 묵향(墨香)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오랜 외국 생활로 우당이 어떻게 동양화 창작을 이어갔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귀국하여 보니 우당은 이른바 화가를 비록 생업으로 삼지 않았지만 붓을 손에서 놓지 않고 오늘날까지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촌시를 아껴 그림을 그리면서 시류에 뒤지지 않기 위해 공모전에 출품하여 여러 차례 국전과 대한미술대전에 입상하였다. 이와 더불어 우당은 후소회 및 경기 지방 작가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 들었다. 우당은 예전에 규당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동양화의 전통 화풍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탈바꿈하기 위해 늘 고민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葵塘 韓維東 선생님은 생전에 즉흥적 화조(花鳥)와 기명절지(器皿折枝)에선 일가를 이뤘지만 오늘날 이런 화풍의 맥은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당 역시 단순히 규당의 맥을 잇는다는 계승의 차원을 넘어서‘붓을 깨는’작업에 오랫동안 몰두하고 있다. 파필(破筆)은 일종의 동양화 기법인데, 먹을 찍은 붓에서 물기를 거의 제거하여 털이 낱낱이 쪼개진 상태의 

붓으로 선과 면을 처리하는 기법이다. 


이번 작품전에서 선보인 우당의 많은 그림들은 이런 파필 기법에 착안한 면이 있어서 건조하면서도 대상의 바탕과 뼈를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빛과 색이 빚어내는 형상을 먹으로 구현하고자 한 그의 실험 정신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지하는 검은 색은 빛이 떨어지는 각도와 세기에 따라 푸르게 또는 다른 여러 색깔로 보여 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서구의 인상주의는 이른바 회화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빛에

따라 변화하는 산과 들을 동양화의 단순 수묵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우당이 그려 낸 산과 들에서 우러나는 짙은 음영은 때로는 아날로그 필름의 감광 현상을 보는 듯하고 때로는 마치 무두질한 가죽의 결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오늘 우당의 작품전은 오랫동안 실험하고 고민한 끝에 얻은 결실이기에 한층 뜻이 깊다.

- 배우면서 늙어 가는 우당의 덕을 기리며...-



예술작가로서의 삶이란 힘든 길이다

작가노트  l  尤 棠 한석봉  Han Suk Bong

규당 한유동 선생은 이당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후소회를 창립하신 원로 작가이다.  필력이 다양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색채의 아름다움과 구성의 멋스러움, 화려한 표현기법 등으로 화조화 기명절지 산수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며 명품을 많이 남기셨다. 강직하고 흐트러짐 없는 사대부의 기질을 그대로 그림에 내포하는 작품활동을 하시었다.

특히, 나와 친구 종진이에게는 한없는 애정과 관용을 베풀고 기다려 주신 엄부(嚴父)와 같은 분이셨다.

용문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만나뵌 노화가(老畵家)는 광채가 나는, 작으면서도 자기만의 강력한 세계가 엿보였다. 그 카리스마에 매료되어 수업이 끝나면 미술실로 달려가 선생님의 채본을 받아 열심히 그리고 또 그렸다. 

2년의 동양화반 활동을 하며 미술실을 지켜온 내게

  “예술작가로서의 삶이란 힘든 길이다. 

     오늘 그린 그림이 팔려야 먹고 산다고 하면 비참할 수 밖에 없다. 

     그림도 돈에 쫓겨 좋은 작품을 할 수 없다. 오랜 생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생활문제를 해결하고 욕심없이 순수하게 그림을 해라! 

     너는 이과니까 공대를 가서 그림을 그려라. 

     미술공모전을 통해 실력으로 인정을 받으라.”

미술대학 보다는 공과대학을 선택하게 됨에는 규당 한유동 선생님의 진심어린 충고가 있었다. 나의 가정생활을 잘 이해하시는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3남매를 잘 양육하고 보살펴주신 내 어머님께 더 이상의 수고를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고, 당시에 예술을 한다는 것은 우리 가족의 형편상 무리가 많이 따를 수 있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무시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지금에서야, 나에게는 선생님께서 제시하신 길이 매우 적절했고, 그 혜택을 크게 받고 있슴에 감사드린다.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한가지 만은 아니었다. 여러 굽어진 오솔길을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그 길에서 깨우치고 터득한 여러 경험으로 인해, 현실에서 두려움 없이 내 예술세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된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말씀은 한 줄기 빛과 같았고 꼭 이루고 싶었다.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하면서 틈틈이 그림 수업을 병행했다. 매주 일요일에는 규당 한유동 선생님께 찾아가 그림을 지도받았고, 방학 때가 되면 개인화실에서 뎃상을 비롯해 부족한 과정을 채워나갔다.

공과대학 4학년 학과생들은 기사 자격시험에 여념이 없었다. 고심 끝에 나는 기사시험 대신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출품을 선택하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림을 시작한 지 8년의 마디를 짓기 위한 시도는 무참히 깨어져 갔다. 동물원에서 부엉이 우리에 앉아 스케치하고, 고민하고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선생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삶을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도 큰 변화가 생겼다. 뼈속까지 깊은 가르침이 큰 약이 되었는 지, 당시 문화부에서 마지막으로 개최하는 제3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공모전 동양화부문에 입상함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되었다.

군대생활은 실제의 한국의 산수를 창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강원도 김화에서 장교로 근무하면서 작전을 위해 적근산, 대성산 고지들을 다니면서 강원도 산악의 오묘함과 산수화와의 연관성을 늘 생각하면서 문제점을 즐겨 탐닉하고 관찰했다. 전형적인 한국의 산하의 모습과 동양화에서 나오는 기암괴석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어서 혼돈이 많았다. 그림과 내 눈을 의심하고 평범하면서도 은은한 자태를 갖는 한국의 산 모습을 스케치 하면서 어떻게 한국의 산을 그리나 꿈꾸어 왔다. 재대 후 미술대학원으로 진로변경을 시도하였으나 공과에서 문과로 학점인정 문제로 여의치 않았고, 틈틈이 화실에서 초중고 학생들에게 지도 활동을 하며 생활하던 중, 학과의 원로교수님(김원택박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 자네같은 사람을 꼭 필요로 하는 회사를 추천하고 싶다며, 과학으로의 광학(光學)과 미술을 접목하여 국내에 전문인이 부재한 광학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게!”라는 제안을 주셔서, 대한 잉크, 페인트주식회사를 찾아 면접을 통해 입사하게 되었다. 회사생활은 내게 즐거웠고 유익했다.‘86년도 당시의 회사의 시설 등은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뀌기 전이어서, 일일이 배합자가 생산부서에 가서 안료를 구해 수지와 버물여 3Roll Mill을 이용해 미세하게 안료를 가공하고, 페이스트상의 가공물을 첨가제와 희석제 등을 섞어 페인트액상을 만들고, 조색하여 배합을 작성하는 과정을 직접 해야 했다.

색상재료를 사용하면서 평소 궁금하고 무지 했던 안료와 가공법, 색깔연출, 도료생산과정에서 도장재의 효용 등 내게는 너무도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특히, 조색이라는 색깔연출은 그림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너무도 흥미롭고 색채이론을  경험하는 실질적인 과정이었다. 때론 특수한 색깔은 그림에 적용하여 나만의 표현을 시도하였고 미술대전에 입상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자주 애용하였다. 색상재료에 대한 눈이 떠지면서 동양화 재료의 구성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풀 수 있었다

또 하나.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도료분야는 상당히 고급기술이었고 스펙트럼으로 분류되는 빛의 파장 보다 미세하게 갈아지는 가공기술과 이를 도장하는 기술력은 다양하고도 공부할 게 많았다. 서양화를 하는 이들에게는

페인트 도장이 곧 현대예술이다. 단지 기능인들이 현장에서 작업용으로 사용하니 기능적으로 보여도, 내 눈에는 터치 하나하나가 예술이고 작품이었다. 순수회화에 활용할 방법도 여러가지 있었고, 작은 판넬에서부터 자동차 같은 큰 제품 도장에 까지 다양한 공법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고 항상 흥미로왔다. 기술자로 연구원으로 여러 의미있는 경험을 하였고, 해외 고급 기술도 습득하게 되었다. 시장형성이 예측되면서 기술연구소장(강신원)님의 아낌없는 배려로 색채연구실을 개설하면서 전문적인 색채연구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해외의 유수업체의 안료 연구와 새로운 유행색(Fation Color)연출, 제품에의 응용기술, 천연도장재, 물감, 특수재료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국내 최초의 칼라리스트를 양성하며 색채연출의 전문분야를 시도하였다. 이를 응용하는 칼라이벤트(Color Presentation)을 주최하며 페인트 도장재를 제품마무리 하는 국내 관련 모든 업체(자동차,가전,공예,건축 등)를 대상으로 앞으로 전개될 유행색(Fation Color)을 정기적으로 칼라쑈를 통해 업계에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자수박물관,단국대학교 박물관,호암박물관 등과 교류하면서 한국의 색상의 상품화를 위해 간단한 문화컨셉영화도 만드는 종합적인 색채문화상품화를 시도하여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체로 발돋음 하였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10년의 계획을 세워 해마다 미술대전에 출품을 했다. 이를 위해 밤을 새워가며 그림을 그렸다. 절반의 수확을 거두면서 희비가 엇갈리며 공모전의 운영과 불합리에 회의(懷疑)감을 갖게 되면서 출품대신 내 개인 작업으로의 치중이 점차 이루어졌다. 개인작업은 공모전과 달리 기량을 요구하는 분야이고 우리나라 화가들의 길은 공모전을 통해 이름을 얻고 개인작업을 통해 자기만의 세계를 꾸려 나가야 한다고 선생님을 통해 자주 들었다.

後素會는 이당 김은호 선생과 그의 제자들로 창립되어 오늘까지 84년을 이어온 국내 최장수 동양화 단체이다. 以堂 김은호(金殷鎬)선생은 순종, 고종, 역대 임금님의 어진을 그린 어용화사(御容畵師)로 최고의 화가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를 빼앗 기고 숨죽이며 살며 언어와 글도 사용하지 못하고 말살되는 현실 앞에서 화가를 배출하고 자긍심을 일깨우시며 일제에 대항해 국내 화단을 지켜왔다. 교육적으로도 제자들을 소중하게 자택에 기거하게 하며 그림을 가르치고 길러오신 교육자이시다. 사모님은 평소에도 검소해야 했으며 제자들의 반찬이 선생님보다 못하게 되면 불호령을 내리는 등 제자사랑의 각별 하셨다 한다. 우리 근대 화단의 산 역사이신 이당 김은호 선생이 그 제자들과 함께 논어에 나온 繪事後素 글귀에서 후소를

따서 창립한 단체가 후소회(後素會)이다. 1995년 규당선생님의 추천이 있은 후, 그간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후소회 회장 김기창 선생과 혜촌 김학수 오당 안동숙 선생이 입회한 자리에서 후소회에 입회하게 되었다. 후소회의 가입은 나의 

경우는 스승의 수제자로 선생의 화맥을 이어갈 수 있는 선생의 추천자의 조건을 만족한 경우였다. 후소회의 가입은 선생의

구상화풍을 이어가야 하는 책무와 나름대로 창의성을 발휘한 작가 자신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과제를 갖게되었고, 

새로운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했다. 1997년 여름. 이제는 되돌아 가야 할 때가 왔다. 화가로서의 삶에 도전장을 내기로 결심하고 회사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한석봉색채디자인연구소를 개설하고 다양한 주문자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를 믿어주는 이들에 대한 보답이며 영업이었다. 이제는 내 이름으로 나가는 브랜드와 예술성 있는 환경색채 

디자인과 벽화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축열조에 그래픽디자인을 제시하고 분당, 

부천, 용인을 비롯해 여러개 지점에 디자인 현장작업을 하였고, 쓰레기 소각시설 일명 자원회수시설을 색채디자인 및 

벽화등을 하면서 혐오시설에 대한 이미지 업용 수퍼그래픽의 세계를 넓혀왔다. 점차 수요가 확대되면서 교정기관인 청주여자교도소의 재활환경개선을 위해 벽화 작업을 하면서 보람도 느껴왔다. 더욱이 유치원, 학교 등 교육시설에 색채디자인과 

벽화를 보급함으로서 많은이들과 함께하는 화가의 보람을 지속해 오고 있다. 실천적으로 현장에서 체득한 색채연구는 보다 섬세해야 했고 주변환경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환경색채와 미술을 접목하게 

되어, 복합적인 환경디자인 미술을 구사하게 되었다. 작은 화폭보다는 대형 벽면을 상대로 큰 작품에 발버둥치 듯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작은 화면에서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발견과 사고의 전환을 느끼며 짜릿한 희열감과 성취감을 맛보곤 한다. 

특히 화실속의 제한된 작업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예술성 있는 환경미술가이고 싶다.

이제는 나만의 작품에 몰두하면서 그간의 여러 시도를 통해, 색채대화라는 여러 경험적으로 색깔은 사람마다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체득했다. 다양성은 여러 가지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반해, 정(靜)적인 생각에 머물게 할 수는 없었다. 빛을 등지면서 단순하면서 강도있는 이미지를 발견했다. 비록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리네 잠재의식내에 친근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 여운의 맛을 보았다. 그래서 시도했고, 그간의 화풍에서 벗어나는 탈출구 로 삼아 심혈을 기울였다. 변화는 의도보다 필연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畵   歷

  1974  葵塘 韓維東 先生 師事

공모전수상

  1981 제3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입상 (문화부)

  1984 제 3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상 (미술협회)

  1989 제 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상 (미술협회)

  1992 제1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상 (미술협회)

  1995 제1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상 (미술협회)

개인전

  2016 첫 번째 한석봉 그림전 (예술의 전당)

단체전

  1978          상림회(桑林會)전 (신문회관)

  1989-2020  안양일요화가회전

  1991          누드드로잉전 (미담갤러리)

  1997-2000 규화회(葵畵會)전 (롯데갤러리)

  1998          新脈MOTIVE展 초대전 (하나로갤러리)

  1996-2020 후소회(後素會)전

  2012          경기향토작가초대전 (성남아트센타)

  2013-2020 안양미술협회회원전

  2013-2020 운사회전

  2013-4      경기의 사계-아름다운산하전 (이천,의정부예술의전당)

  2014-2020 경기미술협회회원전

 해외전

  2015          American International Exihibition2015(Riverside Gallery)

  2016          Newyork Artexpo 2016(Lafayette Fine Art Center)

  2016          The Exihibition of China 7 Korea 2016

  2016          Korea-China International Art Festival 2016

  2016          독일, 미국 순회전 Galerie AM Park

SUPERGRAPHIC

  수원시,구리시,의정시,용인시,송도시 자원회수시설

  분당시,강남시,일산시,부천시 양산시,용인시 한국지역난방공사 축열조

  교정시설 청주여자교도소 외, 내부

  교육시설(학교)외 환경색채디자인 및 벽화 다수

學   歷

  1982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공업화학과 졸업

軍   歷

  1984          ROTC 20기 장교소집해제

經   歷

  1985-1997  대한잉크,페인트 주식회사 근무

   - 자동차도료 기술부 근무

                 기아자동차 NB-3 Project(프라이드)완성

                 기아자동차 아산공장 신설 도장라인 안정화

   - 색채연구실 구성

                 Color Presentation 자동차 패션칼라 연구

   - 기술연구소 색채연구실 실장

                 공업용 Color Presentation 자동차 패션칼라 연구

                 건축용 Color Symulation 환경색채연구

                 안료전문연구(BASF,CIBA-GEIGY,MOBAY,NPC 외)

  1996~ 현재  한석봉색채디자인연구소 운영

   - 환경시설물 환경색채연구 및 벽화제작

   - 교육시설 환경색채디자인 및 벽화제작

   - 교정기관 환경색채디자인 및 벽화제작

   - 기타 환경색채디자인 및 벽화제작  

현   재 : 규화회(葵畵會), 후소회(後素會), 운사회,

            안양일요화가회 회장

            광명문화원,안양문화원 강사

            한석봉색채디자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