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화展 - Glorify of life 생의 찬미 2021. 10. 22fri _ 11. 03wed

김일화

Glorify of life 생의 찬미 <작가노트>

채움과 비움

그동안‘생의 찬미(生의 讚美)’시리즈 작품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경험해 왔던 것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삶 속에서의 기쁨, 사랑, 절제와 자유, 즐거움 희망, 행복, 실존으로서의 비애 등을 캔버스에 어떻게 녹여 낼 것인가? 하는 과제에 몰두한 흔적들이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술 행위 속에서 치유되어 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또 다른 희열 속으로 들어간다. 

일본에서 우키요에의 섬세한 선미(線美)에 한 동안 빠져 있었던 나는 얼마전 고국에 들어와 작품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민화적인 요소들을 도입하고 서예의 선조(線條)를 색조와 혼합하는 시도를 했다. 이는 수묵화를 연상케하는 자유로운 손놀림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속에서 색의 얼룩과 번짐, 겹침은 즉흥적인 선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표출된다. 선(線)의 채움이요 면(面)은 비움으로 면으로 충분한 공간을 내면서 다시 선으로 채우면서 비움과 채움을 연속하여 어디쯤에선가 중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쯤 중단하여 끝낼 것인가? 나의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현대 회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보다 강하고 화려하고 즉흥적이면서 클로즈업시키는 구성은 자유분방하고 붓놀림의 유희(遊戲)를 즐기면서 삶의 얼룩이 묻어 우연(偶然)의 효과로 나타난 것이다. 때로는 나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화면에 매료되어 마치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이 무애의 경지로 향하고 싶은 갈망과 산고(産苦)의 고통이 나만의 조형 언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의 길은 어떻게 변할지 지금 나로서는 예상할 수가 없지만 스스로 행복함과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2021년 10월     김일화  IL HWA KIM


글  l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원로회 회원    백 경 원 쓰다

生의 誕生을 歡喜와 그리움으로 

承華시킨 사랑의 傳令使

우리 인간이 평소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일까?

아마도 意識과 無意識속에 潛在되어 있는 것이 生과 死가 아닐까?

태어남과 죽음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宿命的인 데서 비롯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의식은 평소에는 접어두고 살아간다.

김일화 작가의 작품 主題는 주로“生의 讚美”시리즈로 시작된다. 아마도 信仰生活을 通하여 터득한 作家 自身의 信仰 告白일지도 모른다. 藝術 表現과 宗敎 관계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深奧한 관련을 가지고 있지만 그 에 있어 이러한 歷史的 意味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일반적으로 대개의 繪畵 作品은 視覺的 効果에 의한 樣式을 取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김일화 작가의 대다수의 작품에 나타난 畫面상의 Image 들은 오히려 감상자로 하여금 생각을 품게 하는 奧妙한 印象을 남긴다. 마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살이 큰바위에 부딪쳐 튕겨 나오는 듯한 에너지의 충격은 감상자로 하여금 新鮮한 衝激을 안겨준다. 畫面상의 計劃이 없는 듯 하면서도 붓놀림의 偶然的인 화면효과가 繪畫的 洞察力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것이다. 거기다가 作家가 살아온 累積된 삶의 痕迹들이 新鮮한 造形言語들을 역어 내는 非凡함이 있다. 이러한 이 작가만의 독특한 繪畫的 表現 技法이야 말로 論理的으로 풀려 나올 수 없는 이 작가만의 수수께끼가 아닐까?

그러므로 김일화 작가에 있어 전통적 造形 要素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작품의 주제에서 알수 있듯이 기독교적 世界觀을 堅持한 채 조건 없는 사랑으로 탄생의 기쁨을 작가의 獨特한 想像力으로 驅使한 結晶体인 셈이다.

오래전 모드니즘을 탄생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修行 했던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이자 평론가 였던 ‘기욤 아포리네르“는 그의 自敍傳에서 藝術 表現은 마치 羊이 草原에서 풀을 뜯어 먹고 젖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마치 색상이 가지는 이미지와 같이 具體化 되어 있지 않은 것을 象徵性으로 藝術 表現으로 한 手段은 오랜 美學的 感性 表現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제 김일화 작가의 작품세계는 그의 끈질긴 노력과 적지 않은 近來의 눈부신 국내외 작품 활동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그 는 이제 쉽지 않은 큰 山의 고비를 넘긴 것이다. 남은 과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 만의 信仰的 世界觀과 더불어 未來 닥쳐올 狀況的 時代 情神이 反影될 때 또 다른 그의 작품 세계를 기대 해도 좋을 것이다.



글  l  일본사가미술협회 이사  日本佐賀美術協会 理事     핫토리 다이지로 服部大次郎

자유와 부자유 自由と不自由

구상의 풍경화가 어느덧 해체되고 선과 면에 의해 색채가 약동하는 추상적인 회화로 변모한다.

상당한 심경의 변화와 각오를 다진 노력으로 보인다. 방향성으로 보자면, 우선 자유로워지려는 현대 회화(컨템퍼러리)의 컨셉이자 작가 자신을 캔버스에 투영시킨 해방적인 구상이기도 하다.  말하기는 쉽지만, 동시에 부자유와 어려움이 발생하는, 진정한 작가라면 경험하게 되는 부조리이기도 하다. 이를 토대로 작가(김일화 작가)의 작품을 보면, 형태를 부수고 재생하는 반복의 회화 작품이다. 색으로 면을 만들고 면과 같은 굵직한 선으로 면을 덮어 씌우며 파괴해 나간다.  아니, 부수는 것이 아니라 색채를 겹쳐서 색채의 울림으로 서로 하모니를 이루어 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생산이다. 세잔과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색채의 반복, 선과 면의 반복. 터치 그 자체가 물체화되어 가는 것도 피카소이며  폴록이며 올바르게 현대 회화를 답습하고 있다. 물감이라는 안료의 도구는 더 이상 도구도 아닌, 작가의 손가락, 손, 신체의 일부와 같은 것으로 변해 버린다. 작가는 자연스럽게 현실 세계(사회)를 해방시키고, 자기자신은 자유를 손에 거머쥐려고 하겠지만, 강한 동물적인 색채에 세잔, 고흐, 피카소, 폴록 등이 겹쳐 보인다. 


이번 작품은 풍경의 해체에 인간이 미묘하고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사회 불안과 코로나 재난 이전에 작가가 강하게 다시 한번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기에 나타나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 가족이며 하나님, 부처일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관계, 환경이라는 것이 떠오르는 것이다.

개척 길 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희망’이라는 한 글자 일 것이다. 답답하고 불안한 현실 등은 캔버스 바깥 세상의 일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회화 공간은 우여곡절이 많으며, 작가는 가시 밭 길을 선택하고 각오하고 있다. 얼마전 미술대전에서 대상으로 뽑힌 작품은 흰색을 기조로 하여 블루, 그린의 거친 색면을 배치한 숲이나 도시에 빨간(분홍)선의 사람들이 복잡하게 융합한다. 흰색, 빨간색, 파란색, 녹색의 네 가지색. 색채를 억제하고 정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유와 부자유가 공존하는 듯한 현대가 드러난다. 

개인전 축하합니다.

具象の風景画がいつしか解体され線と面による色彩が躍動する抽象的絵画へと変貌する。

相当な心境の変化と覚悟を持っての取り組みに思われる。方向としては、まずは自由になろうとする現代絵画(コンテンポラリー)のコンセプトであり作家自身を重ねた解放である。言うは易しいが、同時に不自由や困難が生じるという本当の作家ならば経験する不条理でもある。その上で作者(金さん)の作品を見れば、形を壊しては再生するという反復の絵画である。色で面を作り、面のような骨太の線で面を覆うように壊していく。いや壊すのではなく色彩を重ね色彩の響き合いでハーモニーを生むと言うべきだろう。新たなる生産である。セザンヌやゴッホがそうであったように色彩の反復、線と面の反復。タッチそのものが物体かしていくところもピカソでありポロックでもあり正しく現代絵画を踏襲している。絵具という顔料の道具は最早道具でもない作者の指、手、身体の一部のようなモノに変わってしまう。作者は自然に現実の世界(社会)を解放し自身においては自由を手に入れようとするのだろうが、強いアニマル的色彩にセザンヌ、ゴッホ、ピカソ、ポロックなどが重なって見えてしまう。

今回の作品は風景の解体に人間が微妙に複雑に絡んできている。社会不安やコロナ禍以前に作者が強く改めて「自分は何者か」を問うているのではなかろうか。そこに生じるものは身近な人々、家族であり、神、仏かも知れない。そこで生かされているというが、「自然と人間」の関係、環境というものが浮上してくるのである。

切り開く道の前に見えるのは大きな「希望」の一字だろう。歯がゆい不安な現実などキャンバスの外の世界の出来事ではある。それでなくとも絵画空間は山あり谷あり壁ありと作者は棘(いばら)の道を選択し覚悟している。先ほどの展覧会で大賞に選ばれた作品は、白を基調にブルー、グリンーのラフな色面を配した森や都市に赤(ピンク)い線の人々が複雑融合する。白赤青緑の四色。色彩を抑え整然と調和している。自由と不自由さが共存するような現代が露呈する。

個展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