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맨과 알랩(Cube man & Aleph)”
태초에 사각이 있었으니……. 그 사각이 확장하고 분할하더니 마침내 사각 인간이 탄생했다. 이것은 사각의 변화 과정을 창조론자의 관점에서 기술하려 함이 아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정상기의 전체 작업을 아우르는 불변의 테마인 사각과 그의 세 번째 개인전 <사각의 확장>, 네 번째 개인전 <사각의 분할>에 이어 이번 전시회 주제 <사각, 오르다>에 관해 논하고자 함이다. 사각의 진화 과정에서 탄생한 이 큐브 블록 형태의 사각 인간, 일명 “큐브맨”은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이 나무 큐브의 단위 형태는 레고 블록과 유사하지만,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Kristiansen)이 발명한 레고 블록처럼 단시간에 여러 블록을 연결할 수 있는 호환성이나 편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큐브맨은 오히려 정상기 작가 특유의 상당히 불편하고 긴 노동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지만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나의 기본 단위인 큐브 형태는 만물의 근원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연관 지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레고 블록과 큐브맨은 어딘지 닮아 있다. 레고의 창시자인 크리스티안센도 이 레고가 만물을 창조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놀이 방식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즉,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 레고 블록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은 이 블록쌓기 놀이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재창조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만물의 근원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에 대한 탐구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을 찾아내는 일에 몰두한 이유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와 기본 단위만 알아낼 수 있다면 인간도 조물주처럼 세상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부터이다. 그래서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했고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바람, 불, 물, 흙의 4요소라고 주장했다. 이 보다 더 과학적이고 근대적인 시각을 가졌던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의 근원은 원자라고 주장하며 이들의 이론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정상기의 작업에서 만물의 근원을 이룰 수 있는 기본 단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사각이며, 이 근원적 형태는 시간을 거치면서 확장되고 분열되면서 수량적으로 자신의 영토를 넓혀갔다. 이 분열과 확장을 통해 물리적으로 몸집을 키워가던 정상기의 큐브가 이번 전시회를 기점으로 루빅큐브와 맞먹는 크기로 변화되며 축소 지향적인 진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모든 큐브가 루빅큐브 크기만큼 작아진 것은 아니며, 대다수 작업이 사각의 기본 프레임 위에 작은 큐브맨이 붙어 있는 형태로 구성된다. 구상성이 금기시되던 단일한 사각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사각 프레임의 원소 일부가 분화되면서 생성된 것 같은 작은 큐브들이 레고 블록의 형태로 결합하면서 사각 프레임 위에서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동안 정상기의 사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진화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만큼이나 서서히 진행되어 한 눈에 큰 변화를 읽어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최근 작업에서 큐브맨을 구성하는 기본 블록의 크기가 1.5~4cm에 불과할 정도로 마이크로화 된 이유가 무엇일까? 큐브의 이러한 수량적인 변화의 이유를 한 단편소설을 통해 우회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하자.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소설 「알렙」에 인용된 까를로스 아르헨띠노라는 시인은 둥근 지구의 모든 것을 시로 표현하고자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길고 산만한 알렉산더 운의 시구들을 무한히 나열했다고 한다. 반면에 같은 소설에 인용된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인 파리드 알-딘 아부 탈립 무하마드 벤 아브라함 아타르는 전체이면서 하나인 신성을 설명하면서 ‘모든 새이면서 한 마리의 새’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작 작업의 접근법 역시 때로는 일반분야와 마찬가지로, 수량적 전략을 사용하느냐 아니면 비수량적 전략을 사용하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의 접근법이 수량적이라면, 이 신비주의 페르시아 시인의 전략은 비수량적 접근법에 가깝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가 지구 위에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를 시에 담으려고 했다면, 이 페르시아 시인은 모든 새를 이야기하기 위해 모든 새이기도 한 단 한 마리의 새를 선택했다. 보르헤스는 이 소설에서 이와 관련된 보다 극단적인 예인 알렙을 제시한다.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이며 세계의 모든 것을 동시에 수렴하는 물체로 알려진 알렙은 크기 2~3cm에 불과하지만 전혀 축소되지 않은 거대한 우주 공간이 들어 있으며, 사물의 모든 지점과 시점이 한 곳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일부 유대 신비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이 신비한 물체와 큐브맨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큐브맨을 구성하는 평균 크기 2~3cm의 큐브가 크기의 유사성으로 인해 알랩의 특성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 미니 큐브는 두 개의 거울 사이에 위치한 사물처럼 무수히 많은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작은 레고 블록들을 조립하여 만들 수 있는 세상은 사실 무한에 가깝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작은 블록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본다는 것은 그리 무리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 것이다.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등장하는 ‘액자소설’처럼 정상기의 큐브 역시 큐브 속에 또 다른 큐브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큐브맨들은 큐브 프레임을 기어오르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큐브 프레임은 큐브맨이 올라가거나 이동하기 위한 받침대 역할이 아닌 큐브맨의 최소 단위인 큐브 그 자체이기도 하다.
소설 알렙에서 주인공이 알렙을 발견하기 위해 계단을 걸어 내려갔듯이 큐브맨도 무언가(알렙?)를 찾아 큐브 프레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어찌 보면, 모든 근원적 요소의 최소 단위이며 모든 세상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큐브의 축소형인 큐브맨은 알렙을 닮아 있다. 큐브맨은 세상의 모든 큐브를 수량적으로 축소한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큐브의 수량을 축소 없이 동시에 포함하기 위해 제시된 또 다른 최소 단위이다. 이 큐브맨을 알렙에 대입하여 설명하면 이러하다. “이 큐브맨은, 이 큐브맨에서, 무수히 많은 큐브를 보았고, 이 큐브가 모여서 만들어 내는 세상을 보았고, 이 큐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가가 흘려보낸 무수한 시간을 보았고, 지금 이 큐브가 만들어지기 전 이 큐브를 품고 서 있던 나무 한 그루를 보았고, 이 큐브가 맞이했던 그리고 맞이할 무수히 많은 밤과 낮을 보았고, 지구나 다른 행성처럼 조물주에 속하는 고유의 형태인 원형을 가공하여 인류의 문명을 만든 사각의 역사를 보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거나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큐브의 크기와 시간을 보았다.”
유승덕(번역자 혹은 작가, 전시기획자로 추정)
“큐브맨과 알랩(Cube man & Aleph)”
태초에 사각이 있었으니……. 그 사각이 확장하고 분할하더니 마침내 사각 인간이 탄생했다. 이것은 사각의 변화 과정을 창조론자의 관점에서 기술하려 함이 아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정상기의 전체 작업을 아우르는 불변의 테마인 사각과 그의 세 번째 개인전 <사각의 확장>, 네 번째 개인전 <사각의 분할>에 이어 이번 전시회 주제 <사각, 오르다>에 관해 논하고자 함이다. 사각의 진화 과정에서 탄생한 이 큐브 블록 형태의 사각 인간, 일명 “큐브맨”은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이 나무 큐브의 단위 형태는 레고 블록과 유사하지만,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Kristiansen)이 발명한 레고 블록처럼 단시간에 여러 블록을 연결할 수 있는 호환성이나 편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큐브맨은 오히려 정상기 작가 특유의 상당히 불편하고 긴 노동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지만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나의 기본 단위인 큐브 형태는 만물의 근원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연관 지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레고 블록과 큐브맨은 어딘지 닮아 있다. 레고의 창시자인 크리스티안센도 이 레고가 만물을 창조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놀이 방식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즉,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 레고 블록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은 이 블록쌓기 놀이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재창조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만물의 근원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에 대한 탐구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을 찾아내는 일에 몰두한 이유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와 기본 단위만 알아낼 수 있다면 인간도 조물주처럼 세상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부터이다. 그래서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했고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바람, 불, 물, 흙의 4요소라고 주장했다. 이 보다 더 과학적이고 근대적인 시각을 가졌던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의 근원은 원자라고 주장하며 이들의 이론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정상기의 작업에서 만물의 근원을 이룰 수 있는 기본 단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사각이며, 이 근원적 형태는 시간을 거치면서 확장되고 분열되면서 수량적으로 자신의 영토를 넓혀갔다. 이 분열과 확장을 통해 물리적으로 몸집을 키워가던 정상기의 큐브가 이번 전시회를 기점으로 루빅큐브와 맞먹는 크기로 변화되며 축소 지향적인 진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모든 큐브가 루빅큐브 크기만큼 작아진 것은 아니며, 대다수 작업이 사각의 기본 프레임 위에 작은 큐브맨이 붙어 있는 형태로 구성된다. 구상성이 금기시되던 단일한 사각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사각 프레임의 원소 일부가 분화되면서 생성된 것 같은 작은 큐브들이 레고 블록의 형태로 결합하면서 사각 프레임 위에서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동안 정상기의 사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진화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만큼이나 서서히 진행되어 한 눈에 큰 변화를 읽어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최근 작업에서 큐브맨을 구성하는 기본 블록의 크기가 1.5~4cm에 불과할 정도로 마이크로화 된 이유가 무엇일까? 큐브의 이러한 수량적인 변화의 이유를 한 단편소설을 통해 우회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하자.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소설 「알렙」에 인용된 까를로스 아르헨띠노라는 시인은 둥근 지구의 모든 것을 시로 표현하고자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길고 산만한 알렉산더 운의 시구들을 무한히 나열했다고 한다. 반면에 같은 소설에 인용된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인 파리드 알-딘 아부 탈립 무하마드 벤 아브라함 아타르는 전체이면서 하나인 신성을 설명하면서 ‘모든 새이면서 한 마리의 새’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작 작업의 접근법 역시 때로는 일반분야와 마찬가지로, 수량적 전략을 사용하느냐 아니면 비수량적 전략을 사용하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의 접근법이 수량적이라면, 이 신비주의 페르시아 시인의 전략은 비수량적 접근법에 가깝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가 지구 위에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를 시에 담으려고 했다면, 이 페르시아 시인은 모든 새를 이야기하기 위해 모든 새이기도 한 단 한 마리의 새를 선택했다. 보르헤스는 이 소설에서 이와 관련된 보다 극단적인 예인 알렙을 제시한다.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이며 세계의 모든 것을 동시에 수렴하는 물체로 알려진 알렙은 크기 2~3cm에 불과하지만 전혀 축소되지 않은 거대한 우주 공간이 들어 있으며, 사물의 모든 지점과 시점이 한 곳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일부 유대 신비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이 신비한 물체와 큐브맨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큐브맨을 구성하는 평균 크기 2~3cm의 큐브가 크기의 유사성으로 인해 알랩의 특성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 미니 큐브는 두 개의 거울 사이에 위치한 사물처럼 무수히 많은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작은 레고 블록들을 조립하여 만들 수 있는 세상은 사실 무한에 가깝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작은 블록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본다는 것은 그리 무리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 것이다.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등장하는 ‘액자소설’처럼 정상기의 큐브 역시 큐브 속에 또 다른 큐브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큐브맨들은 큐브 프레임을 기어오르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큐브 프레임은 큐브맨이 올라가거나 이동하기 위한 받침대 역할이 아닌 큐브맨의 최소 단위인 큐브 그 자체이기도 하다.
소설 알렙에서 주인공이 알렙을 발견하기 위해 계단을 걸어 내려갔듯이 큐브맨도 무언가(알렙?)를 찾아 큐브 프레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어찌 보면, 모든 근원적 요소의 최소 단위이며 모든 세상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큐브의 축소형인 큐브맨은 알렙을 닮아 있다. 큐브맨은 세상의 모든 큐브를 수량적으로 축소한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큐브의 수량을 축소 없이 동시에 포함하기 위해 제시된 또 다른 최소 단위이다. 이 큐브맨을 알렙에 대입하여 설명하면 이러하다. “이 큐브맨은, 이 큐브맨에서, 무수히 많은 큐브를 보았고, 이 큐브가 모여서 만들어 내는 세상을 보았고, 이 큐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가가 흘려보낸 무수한 시간을 보았고, 지금 이 큐브가 만들어지기 전 이 큐브를 품고 서 있던 나무 한 그루를 보았고, 이 큐브가 맞이했던 그리고 맞이할 무수히 많은 밤과 낮을 보았고, 지구나 다른 행성처럼 조물주에 속하는 고유의 형태인 원형을 가공하여 인류의 문명을 만든 사각의 역사를 보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거나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큐브의 크기와 시간을 보았다.”
유승덕(번역자 혹은 작가, 전시기획자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