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서 9월까지_바깥으로부터 - 이창희 2020. 10. 16fri _ 10. 28wed




이창희

9월에서 9월까지_바깥으로부터

여행은 낯선 바깥을 경험하고 내 안으로 그 바깥을 들여오는 일이어서 자주 여행을 떠났다. 작년 9월, 10월에 혼자 모든 것을 계획하고 결행했던 유럽 여행은 지금까지 만났던 바깥과는 차원이 다른 생생한 경험을 안겨 주어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홀로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면 이미 방문했던 곳이라도 낯설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구글 지도를 보며 오늘 방문할 곳을 찾아다닐 때 갖는 자유의 느낌, 방랑자가 된 느낌이 주는 흥분과 매혹이 대단해서 그 막막함과 두려움을 이길 뿐이다.

가장 선호하는 여행 방식은 걷기인데 언제라도 멈춰 설 수 있다는 것은 스쳐가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걷기를 통해 여행자의 감각이 최고조로 고양되므로 그때 만나는 풍경들은 유달리 새롭고도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두 발로 만난 런던의 거리들은 핑크 빛 유혹이었고 프로방스의 빛들은 축복이었으며 베를린의 장벽 잔여물들과 추모 시설들은 애도와 기도가 되었다. 돌아와 기억 속에서 수도 없이 걸었던 이 여행지들은 내게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의 시간을 맞아 우리가 바깥과 얼마나 가깝게 이어져 있는지를 실감하며 예상치 못했던 단절이 가져오는 슬픔을 깊이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감염이 시작되던 때 운 좋게 전시를 겸한 네팔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네팔의 카트만두와 포카라에로의 여행은 또 한 번 나의 세계를 넓혀 주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와는 다른 삶의 방식과 순수한 눈망울들에 대한 기억도 인상적이지만 카트만두와 포카라 간을 오가는 위험하고 불편한 산악 도로를 왕복 14시간 버스를 탄 채 지나왔던 기억은 힌두 사원에서의 장례와 더불어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네팔인들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두고두고 생각하게 했다. 앞으로 죽음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날이 올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는데 코로나의 발발로 인해 죽음을 삶 속에서 느끼며 일상이 코로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더욱 단순하고 간결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여행의 경이를 맛보는 일을 강제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행동의 제약으로 인해 몸의 움직임도 적어지면서 운동을 겸하여 자연스럽게 사람이 드문 깊은 밤에 산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밤 산책이 주는 매력도 대단한 것이었다. 밤에 걷는 거리는 낮에 걸었던 그 거리도 아니고 차를 타고 쌩 지나버리던 그 거리도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 낯설면서도 매혹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고 천천히 걷는 나는 그 얼굴을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특히 두려움이 함께 하는 한밤의 산책길을 동행해주는 불빛들이 큰 위안이 되어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곤 했는데 그런 순간들이 모여 그 거리는, 그 시간과 그 어둠에 친숙한 나에게만 보이는 숨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걷는 일이 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사유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단지 몇 블록을 걸어갔다 오는 산책이지만 내 마음대로 속도와 정지, 방향을 정하며 여행의 자유와 정화를 느끼는 경험은 일상을 단단하게 견뎌내게 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차분하게 보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작업을 하며 재현해 내는 불빛들은 내내 마음을 밝혀주며 위로의 손길을 건네주었다.


창가에 선다는 것은 기억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작년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나는 끊임없이 여러 종류의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중이다. 실제로 떠나는 여행, 기억으로 떠나는 여행, 밤 산책을 통해 나에게로 가는 여행 또 그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통한 여행을...... 각각의 여행들은 바깥을 향하고 있고 나는 코로나로 현실의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시대에도 여전히 바깥을 들여오는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