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전일적(全一的) 표현 - (작업일지)
본인이 생각하는 본심(本心)은 자연과의 합일(合一), 혹은 생명의 윤회(輪廻)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사고를 전일적 (全一的)표현으로 회화에서 구현(俱現)하고 있다. <내 生의 노래(The song of my Life)>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물의 흐름을 소재로 생명의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품들의 소재는 본인의 삶의 터전인 자연환경에서 그 소재를 손쉽게 접 할 수 있는 풍경들이다. 물그림자(The song of my Life-Shadows on the water)에서 본인은 자연의 세계가 전일적(全一的)으로 표현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전일적 관계를 이룬다”의 경우에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여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 됩니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로도 표현됩니다.
서양에서는 빅뱅이론을 기반으로 물질을 우주의 근원으로 보기에
이 세상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보는 유물론적 시각도 있습니다만
물질에서는 물질만 나와야 하는 것이 과학적 결론입니다. 하지만
이미 이 세상에 생명이 나타났다는 것은
우주의 근원에 생명이 본래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그 본래부터 존재하는 창조주를 인정하고
창조된 우주를 하나로 바라보는 것을
<전일적 우주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진실의 근원 www.gincil.com
전일(全一)이란, 형식으로 형태적 측면에서 완전한 모양 혹은 통일성 있는 모양을 말하고, 내용적으로는 오늘의 모순된 상황을 양극으로 치닫는 극단적인 세계관이 아닌 전체(全體)가 개체(個體)가 되며 개체(個體)가 전체(全體)라고 하는 뜻이다. 이는 또한 양극을 잘 알아서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면 상대적인 양극단을 피할 수 있으며 참 본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나에 작품에 그것은 자연을 그리든 아니든 간에 본인에게는 그린다는 창작행위 자체가 자연으로부터 오는 진리에 대한 메시지에 관련되어 지는 부분이다. 본인의 작품이 자연에 대한 단서가 깊이 잠재되어 있고 그것의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987년 이후부터 현재 광릉 숲 가까이 삶의 터전에서 어쩌다 만나는 자연이 아닌 자연 속에서 삶은 생명의 진리를 만끽하며 나 자신이 자연임을 느끼는 삶인 것이다. 산은 언제나 거기 서있고 물소리는 그침이 없다. 달빛에 젖은 꽃향기는 언제 보아도 아무리 들어도 다함이 없는 조물주의 무진장한 터전이다. 본인은 이러한 삶의 환경에서 회화의 새로운 시도를 펼치곤 한다.
나의 작품의 소재들은 물의 순환이다. 아침에 광릉 숲이나 호수를 찾는다. 그곳에서 물에 비친 풍경을 본다. 물에 비친 그림자는 어둡지 않고 밝게 보인다. 물의 비친 이미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지만 바람에 흔들려 비친 풍경은 바래진다. 물은 인연(因緣)에 따라 그대로를 행(行)하여 진다. 물을 그린 회화가 재현적 회화가 아닌 붓질 회화로 그려지면서 사유(思惟) 상태로 바뀌어 진다. 그 사유는 물의 순환(循環),생명의 사유, 인연(因緣)의 상태로 바뀌어 지는 것이다. 호흡이나 진언(眞言)만을 명상하거나 염송(念誦)을 할 경우는 쉽게 집중되어지는 것처럼 붓질회화는 그리는 상태로 머물게 해준다. 개인은 전체를 전재로 하고, 전체도 개개인이 모일 때 비로소 존재한다. 이와 같은 모습을 동양 사상이 가지고 있는 포용성으로 회화로 표현되고 있다. 다시 말해 대립과 항쟁이 그대로 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대립과 항쟁이 그대로 포용되고 갖가지 개성을 발휘하고 있다. 다원화 된 가치관의 시대에 다양성을 그대로 도식화한 세계는 회화에 있어서 전일적 표현인 것이다.
회화의 전일적(全一的) 표현 - (작업일지)
본인이 생각하는 본심(本心)은 자연과의 합일(合一), 혹은 생명의 윤회(輪廻)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사고를 전일적 (全一的)표현으로 회화에서 구현(俱現)하고 있다. <내 生의 노래(The song of my Life)>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물의 흐름을 소재로 생명의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품들의 소재는 본인의 삶의 터전인 자연환경에서 그 소재를 손쉽게 접 할 수 있는 풍경들이다. 물그림자(The song of my Life-Shadows on the water)에서 본인은 자연의 세계가 전일적(全一的)으로 표현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전일적 관계를 이룬다”의 경우에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여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 됩니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로도 표현됩니다.
서양에서는 빅뱅이론을 기반으로 물질을 우주의 근원으로 보기에
이 세상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보는 유물론적 시각도 있습니다만
물질에서는 물질만 나와야 하는 것이 과학적 결론입니다. 하지만
이미 이 세상에 생명이 나타났다는 것은
우주의 근원에 생명이 본래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그 본래부터 존재하는 창조주를 인정하고
창조된 우주를 하나로 바라보는 것을
<전일적 우주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진실의 근원 www.gincil.com
전일(全一)이란, 형식으로 형태적 측면에서 완전한 모양 혹은 통일성 있는 모양을 말하고, 내용적으로는 오늘의 모순된 상황을 양극으로 치닫는 극단적인 세계관이 아닌 전체(全體)가 개체(個體)가 되며 개체(個體)가 전체(全體)라고 하는 뜻이다. 이는 또한 양극을 잘 알아서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면 상대적인 양극단을 피할 수 있으며 참 본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나에 작품에 그것은 자연을 그리든 아니든 간에 본인에게는 그린다는 창작행위 자체가 자연으로부터 오는 진리에 대한 메시지에 관련되어 지는 부분이다. 본인의 작품이 자연에 대한 단서가 깊이 잠재되어 있고 그것의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987년 이후부터 현재 광릉 숲 가까이 삶의 터전에서 어쩌다 만나는 자연이 아닌 자연 속에서 삶은 생명의 진리를 만끽하며 나 자신이 자연임을 느끼는 삶인 것이다. 산은 언제나 거기 서있고 물소리는 그침이 없다. 달빛에 젖은 꽃향기는 언제 보아도 아무리 들어도 다함이 없는 조물주의 무진장한 터전이다. 본인은 이러한 삶의 환경에서 회화의 새로운 시도를 펼치곤 한다.
나의 작품의 소재들은 물의 순환이다. 아침에 광릉 숲이나 호수를 찾는다. 그곳에서 물에 비친 풍경을 본다. 물에 비친 그림자는 어둡지 않고 밝게 보인다. 물의 비친 이미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지만 바람에 흔들려 비친 풍경은 바래진다. 물은 인연(因緣)에 따라 그대로를 행(行)하여 진다. 물을 그린 회화가 재현적 회화가 아닌 붓질 회화로 그려지면서 사유(思惟) 상태로 바뀌어 진다. 그 사유는 물의 순환(循環),생명의 사유, 인연(因緣)의 상태로 바뀌어 지는 것이다. 호흡이나 진언(眞言)만을 명상하거나 염송(念誦)을 할 경우는 쉽게 집중되어지는 것처럼 붓질회화는 그리는 상태로 머물게 해준다. 개인은 전체를 전재로 하고, 전체도 개개인이 모일 때 비로소 존재한다. 이와 같은 모습을 동양 사상이 가지고 있는 포용성으로 회화로 표현되고 있다. 다시 말해 대립과 항쟁이 그대로 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대립과 항쟁이 그대로 포용되고 갖가지 개성을 발휘하고 있다. 다원화 된 가치관의 시대에 다양성을 그대로 도식화한 세계는 회화에 있어서 전일적 표현인 것이다.